단동

 

단동시는 옛 이름은 안둥[安東]이었으나, 1965년 개명하였으며, 압록강 하구부의 신의주 대안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된다. 원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07년 개항장이 되었고, 3년 후 일본의 대륙진출 문호로서 발전하였다.
연평균온도 8.5℃, 연강우량 670~1,200mm이다. 항구는 흘수선(吃水線:배의 물에 잠기는 부분과 잠기지 않는 부분을 가르는 선)이 3m인 배까지 입항이 가능하며, 목재·콩·콩기름 등을 수출한다. 부근 구릉지대에서 생산되는 작잠사를 원료로 하는 견직물공업 외에 제지·비누제조·철강·기계 공업이 활발하다.

 백두산(북파)

 

천지는 백두산 화산체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 산봉우리들의 해발고도는2,500m 이상이고 수면의 해발 고도는 2,189m로 세계 화산호 가운데 가장 높다. 화구는 깔때기모양을 이루며 평면 형태는 불규칙적인 타원형이고, 화구벽은 경사가 아주 급하여 대부분이 절벽으로 되어 있다. 동서 길이는 3.54km, 남북 길이인 천지의 지름은 4.5km 이다. 천지 둘레의 길이는 14km이고 면적은 9.15km²이다. 물의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384m이며, 수심은 남쪽이 얕고 북쪽으로 갈수록 깊은데 평균 수심은 214m이다.

 백두산(서파)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 2,744m, 주봉 장군봉 2,750m로 16개의 봉우리중 가장 높다.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마치 흰 머리와 같다.”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고산화원에 피어있는 눈부신 야생화군락은 7월경에 절정을 이룬다.

금강대협곡

백두산 화산폭발로 용암을 분출하여 만들어진 V자형태의 계곡이다. 2001년도에 산불 진화 중 우연히 발견된 금강대협곡은 폭:200m / 깊이:70m 길이:15km로 동양의 <그랜드캐년> 이라 불린다.

 백두산(남파)

 

백두산 남파에는, 제 4호 경계비가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알려주듯 세워져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탄화목 유적지, 압록강대협곡, 악화폭포가 있다.

탄화목유적지

탄화목 유적지란, 화산활동 시 불타던 나무 위로 암벽이 무너지고 화산재가 덮여서 불에 탄 채로 오랜 세월 묻혀서 화석이 되어버린 곳을 말한다.

 압록강 대협곡

 

보기에도 아찔한 협곡은 남북 20㎞, 폭 200m, 깊이 170m로 커튼을 드리운 듯 주름치마 모양의 바위가 협곡 좌우로 늘어서 있다. V자 형태로 패인 협곡 바닥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강물 흐르는 소리가 공명을 일으켜 협곡을 뒤흔든다.

악화 폭포

악화는 바로 자작나무과의 사스래나무이며,  악화쌍폭(yuèhuà waterfall)은 사스래나무 군락에 있는 두 폭포란 뜻이다. 자작나무는 줄기가 곧게 자라고 키가 큰데 비해 그 사촌 동생인 사스래나무는 고산 식물이라 줄기가 이리저리 비뚤어지고 가지도 여러 차례 갈라지며, 생장 속도도 매우 늦다. 악화폭포는 급류가 흐를 때에 20여미터 되는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이루어지는데, 먼 곳에서 바라보면 흰 비단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압록강공원

 

압록강은 단동을 중심으로 상류에서 하류까지 아주 길고 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 등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명한 장소로 꼽힌다.

위화도

고려말기 1,388년 고려군이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압록강 하류, 신의주와 단동 사이에 위치한 위화도에 머무르던 중, 이성계가 중심이 되어 회군한 사건으로 유명한 섬이다. 현재 북한의 영토이므로 상륙할 수는 없으나, 섬 주변을 유람선을 타고 관광 할 수 있다.

월량도

압록강에는 103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중국이 3개 북한이 나머지를 가지고 있다. 3개의 중국섬 중에 하나인 월량도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반달 모양처럼 생겼다.”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압록강공단교

 

1909년 5월 일본총독부가 철도사용을 목적으로 짓기 시작하여 1911년 10월에 완공하였다. 12연의 교항중 신의주쪽에서 9번째 중국쪽에서 4번째가 개폐식으로 되어 90도 회전이 가능하여 범선들이 통과 할 수 있었다. 1950년 미군에 의해 폭파되어 신의주쪽은 교각만이 단동쪽은 철교와 교각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금도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집안시

 

 

집안시는 동남쪽으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바이산시[白山市]·퉁화시[通化市]·퉁화현[通化縣]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명칭은 지안[輯安]이며 퉁거우[通溝]라고도 불린다. 1965년부터 지안현이라 불렸으며 1988년 5월에 시로 승격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했으며 고구려문화의 발상지이자 고구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지안은 고구려 유리왕이 졸본에서 천도하여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으로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안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유적은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 중심에는 국내성의 성벽이 남아있고, 위나암성(환도산성)과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이 유명하다. 지안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고분 약 1만 2000기에 이른다. 온대 대륙성 계절풍 기후에 속한다. 라오링산맥[老嶺山脈]이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시전체를 관통하여 산맥 남쪽과 북쪽이 기후 차이를 보이는데, 산맥의 남쪽은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의 특색을 고루 갖추어 기온이 높고 비가 많이 내리며, 산맥의 북쪽은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이다.

 국내성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이 서기3년에 졸본성에서 집안으로 수도를 옮긴 곳이다.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는, 강력한 주변세력들의 침략이 미치기 어려운 내지이며, 자원이 풍부하여 생업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춤으로써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서 라고 볼 수 있다.

 광개토대왕릉

 

고구려의 기단식 적석총으로 분구의 적석이 무너져내려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거대한 돌무지와 흡사한 상태지만 기단의 한변이 66m를 넘고 높이가 14.8m 가량 되는 등 장군총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기단의 각 변에는 5개의 입석을 세웠는데 입석의 너비는 약 1.75m,높이는 약 6m 가량 된다. 기단 위의 각 방단 내부는 막돌과 장돌로 채워졌다. 분구 정상부 가까이에 설치된 매장부(埋藏部)는 굴식 돌방[石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무덤에는 기와편들이 발견됐는데, 그 중 “원하건데 태왕릉이 산처럼 안전하고 뫼처럼 튼튼하소서”란 글씨가 적힌 벽돌이 발견되어 태왕릉 이라 추정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이 죽은 뒤 만 2년째 되는 414년,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 광개토대왕비 이다. 이 비석은 사면석 비(四面石 碑)로서 높이가 약 6.39m인데,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동쪽 국강상(國岡上)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워졌다. 광개토대왕비는 높이 6.39m, 무게 약 37톤, 불규칙한 장방형의 기둥 모양이며, 4면에 당시 유행하던 예서체로 1775자를 새겼다.

 장수왕릉

 

화강암 표면을 정성 들여 가공한 절석(切石)을 7단의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基壇)의 한 변길이 30m, 높이 약 13m 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의 역석(礫石)을 깔아 능역(陵域)을 표시하였다. 널방[墓室]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天障石)이 있는 굴식[橫穴式]이며, 2개의 널받침[棺臺]이 있다. 5단 중앙의 구멍을 통해 길이와 너비가 각각 5m, 높이가 5.5m인 공간에 직사각형 석관 두 개가 안치되어 있고, 피라미드 정상부는 잘다듬은 약 50t 의 거대한 돌로 덮여 있다.

 왼쪽 사진은 장수왕릉 옆에 있는 장수왕 후궁의 묘이다.

 오녀산성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성으로, 고구려의 첫 수도 홀승골성(紇升骨城)이 요녕성 본계시 환인현에서 동북쪽으로 8.5km 떨어진 오녀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성은 해발 820m, 남북 길이 1,000m, 동서 너비 300~500m쯤 되며, 고구려의 수도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에 위치해 있다.